2010년 5월 5일 수요일

올드보이(Old boy,2003)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Two Thumbs up을 외쳐서 이제와 난 이 영화가 좋아라고 한들 단순한 취향일 뿐 어떠한 전문가적인 견해를 더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복수와 구원, 속죄와 복수의 연결고리, 오이디푸스의 신화를 가져다 쓰는 것은 절대로 쉬운 풀이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나는 배우의 눈빛에 대해 더 초점을 맞추고 싶다.

최민식이라는 배우는 강렬하다. 그래 맞다. 강렬하다. 그 세대의 남자 배우 트로이카라고 불리는 송강호, 설경구, 한석규 모두와도 견주어도 그 눈빛이 녹록지 않다. 가끔은 순박한 아저씨가 되어 탄광촌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꽃피는 봄이오면), 책방에서 순정소설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해피엔드) 하지만 그의 눈빛은 유난히 상처가 가득하다. 칼에 손가락을 베인 듯한 상처가 아닌, 거친 면에 쓸려 새 살이 돋아도 검푸른 흉터를 남기는 상처가 가득하다.

그런 면에서 그의 연기는 오대수와 어울린다.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던" 그 살가운 눈빛에서 감방에서의 시간을 지나오며 눈빛은 뜨거운 깊이를 더한다. 하지만 그 눈빛은 자신의 새끼를 죽인 아비 사자의 처연한 눈빛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사냥꾼을 물어뜯으려는 폭력의 눈빛이다. 그래서 영화 내내 그의 눈빛이 불편한 것은 그 누군가를 위한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눈빛이기 때문이다. 불편하고 외롭고 거칠고 고통스럽다. 그 자신도 그 고통스러운 눈빛을 견디지 못한다는 듯 복수를 갈구한다.

그러나 미도 와의 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새끼 사자를 지키려는 사자의 눈빛이 더해진다. 영화의 마지막, 그의 눈빛이 그 무엇보다 처연해보이는 이유는, "그가 괴물 오대수인지 그냥 오대수인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자신을 위해서인지 아님 누군가를 위해서 폭력을 갈구하고 있는가"에 따라 눈빛이 달라보이기 때문이다.


유지태의 눈빛. 흔들린다. 맞다. 그러나 이우진은 명백하다. 그의 수트나 펜트하우스에서 보듯 그의 눈빛도 찬찬히 빗어넘긴 머리칼 까지 차갑고 분명하다. 하지만 눈빛은 흔들린다. 묘한 모순이다. 사랑하던 누나를 잃고 15년간의 긴 시간을 복수로 다짐했다. 뜨거운 이유로 차갑게 변해야만 했다. 또 영화 전반은 타고도는 그 복수를 실행하기 위해 머리 깨나 썼을 것이다. 찔러죽일까? 불태워죽일까? 아니야 물에 빠뜨려 죽여버리자. 아니다. 사실 그것은 보통 사람에서 나올 수 있는 복수의 아이템이 아니었다. 오대수를 미워하는 마음은 이우진을 괴물로 만들었다. 이야기가 있는 괴물은 마법에 걸려있는 야수처럼 소녀의 공감을 얻을 만큼 절절하다. 그리고 엘레베이터 안, 누나와의 마지막 만남을 통해 마술이 풀리는 순간 그는 왕자가 아니라 먼지가 된다. 총에 맞고 떨어져 나가는 그의 눈빛은 단순히 죽는 사람의 눈빛이 아니라 텅 비어버린 눈빛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유지태는 그 눈빛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낸다. 보면 볼수록 대수보다는 우진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일 것이다.


미도의 눈빛은 언저리에 있다. 무언가를 분명히 쳐다보지만 그 공간을 에둘러 떠다니는 느낌이다. 아마 인물 그 자체가 외롭게 자란 탓일 것이다. 대수와의 첫 만남에서 아무런 마음을 내보이지 않던 그 눈빛은 오히려 분명하다. 그러나 극이 흐를 수록 미도의 눈빛은 피사체를 분명히 잡는 DSLR이기 보다는 어스름이 피사체의 분위기를 잡아내는 폴라로이드가 된다. 그런 눈빛을 파장이 깊게 표현해내는 것은 중반 지하철에서의 미도의 눈빛이다. 슬픈 눈빛을 하고 있지만 기묘하게 그 눈빛은 부유하는 느낌이다. 눈가 언저리 공기 중에 잡히는 슬픔과 외로움이랄까. 더구나 "번진 마스카라가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라는 영광을 안은 강혜정답게 파르라한 그 분위기는 눈빛을 집어삼킨다. 더이상 눈빛은 눈빛이 되지 않는다. 외로워서 더 매력적인 들풀같은 눈빛을 내보인다. 화면을 장악한다. 또 엔딩장면의 눈빛은 어땠는가. 눈밭이 눈동자에 반사된다. 너무 뻔한 아름다움이다. 근데 그 눈은 속눈썹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듯, 연약하게 나풀거린다. 눈빛은 그렇게 나풀거리며 화면을 장악한다. 오대수라는 괴물을 곁에 두고 평생 살아야 할 (어떤 잡지에선가 읽었던 리뷰의 한 구절) 그녀의 이름모를 비극이 눈가에 흘러들어간다. 명불허전이다. 왜 강혜정이 충무로의 블루칩이었는지, 20살이었던 그녀의 눈빛이 요즘의 신인배우들의 백마디 말보다 얼마나 더 표현력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윤진서는 몇 장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나올때 마다 알수없는 눈빛을 던진다. 그것은 슬픔도 기쁨도 만족도 후회도 버림도 더함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눈빛이기에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울림이 있다. 진폭도 크고 파동도 크다. 누군가는 윤진서의 연기가 정말 아니라고 하지만 (얼굴을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인데 그 어색한 연기란..) 적어도 그 얼굴, 눈빛, 동작에서 풍기는 묘한 "냄새"가 있다. 향기가 아니다. 한번 옷에 배면 쉬이 빠지지 않는 불그스름한 냄새다. 낯설지만 취하게 하는 그 묘한 냄새, 그 연기가 좋았다.

올드보이만 수십번 봤다. 하지만 볼때마다 결국 배우들의 눈빛에 취해있다.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눈빛도 하나의 연기라는 의미에서 가치있는 감상이 아닐 수 없다. 여러분들도 한번 도전해보시라~~!!

댓글 1개:

  1. 안녕 잘 읽었어. 자주 놀러올게. 친하게 지내장.
    너도 놀러와
    http://filmcul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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