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4일 금요일

시 (Poetry,2010)


시를 써본 사람은, 혹은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알다시피 시의 특별함이라고 한다면, 그리 길지 않은 몇 글자 안에 시인의 감정이, 세상의 몇 몇 일들이 폭발할 듯 응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당장이라도 부스러질 것 같은 외로움 일 수도 있고, 뜨겁고 열렬한 사랑이기도 하다. 때로는 활자 위로 극적인 슬픔을 한껏 흘리지만 종종 날카로운 유머가 되어 무언가를 비꼬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 굉장히 끔직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인생과 세상의 모든 삶에게 강간당하는 기분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가빠진 숨을 부여잡을 수 없는 것은, 마음이 지칠 정도로 그 불편하게 온전한 아픔을 떨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영화를 관통하는. 영화의 마지막 미자(윤정희)의 시 "아네스의 노래" 에 담긴 감정 때문일게다. A4용지 한장이나 겨우 채울 그 시 위로 우리는 2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벗겨내던, 미자가 경험한 모든 감정이 흘러넘치기 때문이다.
강렬함이나 파격이라는 닳고 닳은 수식 대신에, 감독은 그저 흐르는 강물과 불편하게 그 위로 넘실거리는 햇빛을 담아낸다. 영화의 처음 퉁퉁 불은 모습으로 강물에 얼굴을 쳐박던 소녀 대신에 그저 그녀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그것을 스크린에 흘려보낸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영화를 닫아버린다. 가슴이 아프다. 지랄맞은 아픔...
더 좋았던 것은 영화 중간 중간 나오던 시다. 조영혜의 시. 부석사의 눈물이던가.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 였던가. 시 때문이었던가. 만질 수 없는 매마른 감정들이 공기 중에 부유한다. 미자의 눈빛은 그것을 좇고 관객은 그것을 지켜본다. 아니, 나중에 허공에 손을 뻗고 있던 것은 내가 아닐까 싶다. 시를 쓴다는 것은 그런 것일까. "누구나 마음 속에 시를 품고 있다는 것 처럼" 주인공을 따라 한껏 품었던 그 시를, 영화가 끝난 후 날숨으로 뱉어낸다. 영화관은 시로 가득찬다.
가끔 영화는 너무 말이 많다. 소설은 너무 길다. 음악은 너무 화려하며, 미술은 거만하다. 그러나 시는 겸손하며, 조신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눈을 내리깐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억만가지 복잡미묘한 감정은 떨군 눈꺼풀 위에 매달려 있는 듯하다. 이 영화는 감히 명작이다.
P.s. 영화가 끝난 후 이 영화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내가 다 가슴이 벅차서 당장이라도 갈라 스크리닝이 되는 것을 상상했다. 거만한 그들이 이 영화 앞에서 예의상의 기립박수가 아닌 가슴이 조여옴을 느꼈으면 좋겠다. 감히 황금종려상을 받으면 기사를 보며 내가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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