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0일 월요일

박쥐 (Thirst, 2009)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 나는 약간 지루한 삶을 살고 있었다. 대학 1년간 해보고 싶었던 것을 다 해봤으니, 조금은 "남들 하는 것"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도서관에서 이 영화의 예고편이나 홍보자료를 보는 것이 나에겐 큰 힘이었다.
영화가 개봉했다. 4월 27일 정도였던 것 같다. 학교를 빠졌다. 처음으로 출석 100%를 할 수 있었는데, 도무지 수업이 끝나고는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CGV압구정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영화를 기다리는 씨네 드 쉐프의 테이블 위에서 나는 조금의 죄책감으로 책을 펴놓고 있었다.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박쥐의 홍보자료를 탐미했다. 한 자 한 자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제 읽었던 영화잡지의 박쥐의 내용이 또 떠오르는 듯 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움질거렸다. 어깨가 들썩였다. 눈 끝이 떨려왔지만 절대 눈을 감지 않았다. 이번엔 욕망이 넘쳐 흐르는 스크린 위를 탐미하고 있었다. 단 한 장면도, 단 한 줌의 소리도 놓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쉽게도 상현(송강호)의 고뇌는 눈에 차지 않았다. 자신을 희생하던 "성스러운" 신부가 남의 피와 친구 부인의 육체를 탐하는 "성스러운" 뱀파이어가 되었다니. 송강호는 복잡한 캐릭터를 잘 풀어나갔지만 썩 와닿지는 않았다. 솔직히 나의 시선과 마음은 이미 한 사람이 뺏어 갔으니깐.
김옥빈은 사실 굉장한 연기 호평에도 불구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단순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감정에 큰 기복은 없는 듯 하다. 욕망 욕망 욕망!!! 원하는 것은 까르르 거리며 가지고야 만다. 부끄러움을 타지 않는다는 태주(아! 이름마저 욕정스럽다..)는 정말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는 듯 관계를 가지고 무고한 사람의 목을 뚫는다. 근데 그 모습이 아름답고, 순수해서 원초적이다. 마작판위의 어설픈 유혹의 눈빛보다는 상현을 탐하는 병실 위의 눈빛이 더욱 매섭다. 매섭지만 달콤하고 그래서 위험하며, 그렇기에 더욱 가지고 싶고 애가 타는 그런 욕정, 그런 욕망이다.
다음에 영화를 볼때는 김옥빈의 눈빛에 좀 더 집중해보시라. 그녀는 눈빛 만으로도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눈을 흘기는 것 만으로도 당신을 탐할 수 있다. 그 눈빛은 음험하다.

P.s. 정말 태주는 상현을 사랑했을까? 차라리 불륜 영화 따로, 뱀파이어 영화 따로 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더욱 음험하지 않았을까 싶다.. 꺄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