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6일 목요일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I'm cyborg, but it's ok, 2006)

아! 이 영화, 개인적으로 너무 안타깝다.
우리가 박찬욱 감독에게 기대한 것은 이런 분위기도, 이런 색감도, 이런 연애 이야기도 아니었다. 허진호의 애틋함이 묻어나는 싸이보그 사랑이야기라니!!! 내가 생각하는 Miss Point는 이 부분이다.

영화는 좀 더 기묘하고 기괴하고, 한마디로 그로테스크한 사랑이야기여야만 했다.

자신을 싸이보그라 착각하는 소녀. 음... 생각만 해도 오만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빵 굽는 냄새같은 소재이다. 저렇게 MovieWeek에 Preview가 나왔을 때에만 해도 저 창백한 옆 모습이라니. 박찬욱의 임수정이라니, 가슴이 두근거려 아무것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영화 뚜껑을 열었을 때의 느낌은 달콤한 크로와상 냄새가 나서 들어갔더니 싫어하는 오곡식빵이 있더라 (심지어 이 영화는 오곡식빵만큼 건강에 좋지도 않다.)는 느낌이다. 너무 산뜻하고 동화적이고 아기자기 하려는 것이다. 박찬욱에게는 "잔혹"동화가 어울린다. 잔혹 "동화"가 아니라고!! 얼마든지 그로테스크할 수 있는 소재인데, 12세 관람가를 만들어 버렸다. 심지어 PC방에서 상대편에게 욕지거리를 퍼붓는 12살들에게도 이 영화는 유치하게 느껴질게다. (혹자는 12세 관람가가 임수정의 상반신 노출-얼마나 언론에서 떠들어 댔던지, 의외로 진~한 키스장면 때문이라는 썰을 풀기도 한다.)

임수정은 "싸이보그" 소녀라기 보다 싸이보그 "소녀" 같았다. "내 사랑" (??) 강혜정이 원래 맡았던 배역인 만큼 임수정한테는 일종의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다. 근데 그녀가 "자신이 사이보그인 줄 아는 미친년"인 적은 덧없는 CG와 함께 손가락과 입에서 미사일을 쏠 때 뿐이었다. 그녀의 야윈 등이나 눈썹을 탈색하고, 틀니를 끼고, 눈물 콧물 범벅이 되서 중얼 거리면서까지 자신을 지워내던 열정은 150% 인정하지만, 조금 아쉬웠던 부분이다. 그녀는 미친년 짓을 하기엔 너무 이쁘다.
아 정지훈. 차라리 복근을 보여주며 선글라스를 끼고 숨막히는 퍼포먼스를 보여줄 때가 좋았다. 심지어 그는 적은 비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임수정에게 밀리기 까지 한다. 배역이 너무 만화 같은 느낌 (남의 특징을 취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이었지만, 어쨌든 저쨌든 간에 너무 밀린다. 심지어 조연인 오달수와 이준면에게도 밀려버리니 안쓰럽다. 연기도 잘하고 비주얼도 멋있지만, 그냥 배우라는 느낌에서는 확실히 밀리는 느낌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중간 중간 나오는 라디오 속의 내레이션이다. 금자씨도 그렇고 박찬욱 영화의 내레이션들은 묘한 매력이 있다. 특히 이 영화를 다시 보았을 때 나는 고3이 되었다. 공부를 못했으니 서울로 대학을 가야만 했던 나에겐 사람들과의 친분과 교감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죽으라고 공부만 했고 외로웠다. 외로움을 이겨내려면 내 안의 철옹성을 더욱 견고히 해야만 했다. 철옹성의 벽이 높아지고 두꺼워질 수록 사람들과의 Connection은 없어졌다. 혹시라도 사람들이 다가올라치면 발톱을 세웠다. 털을 높이고 사람들을 노려봤다. 이 때 나의 귀에도 이런 소리가 들려왔던 것 같다. "..동정심 금지.."

사실 내가 이 영화를 안쓰러워하면서도 애틋해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영군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자신이 싸이보그라는 사실을 알고 (아니, 싸이보그란 사실을 무의식 중에 계속 자신에게 인식시켰겠지) 발톱을 세운다. 그것은 자칫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나처럼 자신의 철옹성을 높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시킨다. 미친 년이라기 보단 불쌍한 년이다. 그러나 임수정은 여기서 미친 년도 불쌍한 년도 보여주지 못한다. 그녀가 영화 속에서 좀 더 외로웠다면 후반부에 도무지 공감도 애정도 가지 않는 이야기도 너그러이 잊어줄텐데.
여러모로 아쉬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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