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6일 일요일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Untold Scandal, 2003)


워낙에 좋아하는 영화인터라 지금도 사람들의 리뷰든지 지나간 뉴스들을 다 챙겨 본 영화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한 블로거의 리뷰, 마지막 이었다.

"조원과 숙부인은 툭-하고 떨어지면서 이승에서 저승으로 간다. 하지만 이번에 숙부인은 사랑의 징표인 자신의 빨간 목도리를 챙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곳에서는 우리가 부부라한들 - 굳이 징표가 없다 한들- 뭐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기에.."

전에 얘기했던 것 처럼, 이 영화는 정극을 바탕으로 하고 코미디를 더했다. 에로틱한 코미디라니. 그러나 천박하지 않다. 모두들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듯 달려들지만 그것은 공격적이라기 보다 낭만적이고 우아하다. 그 몸짓 하나하나가 더 애틋하게 혹은 코믹하게 보이는 이유는 극 중의 모든 인물은 진지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것의 원작이 프랑스의 소설 피에르 쇼데를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이라는 것은 놀라울 따름이다. 살롱 문화와 규방 문화의 적절한 매치, 위험한 유혹과 탐닉이라는 주제는 한국적으로, 누구보다 더 한국적으로 얽혀든다. 그들이 숨막히는 코르셋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지치는 유혹의 게임을 벌였다면, <스캔들>은 넉넉한 한복자락 처럼 완급조절에 능하다. 유혹의 긴장감, 쾌락의 즐거움, 그에 대한 애틋한 마음까지 김대우는 능수능란하게 외국의 한 켠을 한국에 옮겨놓는다. 봉숭아 물이 끝내 새끼 손톱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숙부인의 마지막이 아직도 절절하게 남는 이유는 이 때문일지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미술과 음악이 아닐까 싶다. 정구호와 이병우. 명불허전이다. 당시 뉴스 기사로 보면 순수제작비만 50억원, 미술에만 20~30억원만 투자되었다고 하는데 정구호는 돈에 아깝지 않은 미술을 보여준다. 사치와 향락이 가장 심했다는 19세기의 조선 말, 그 곳은 여느 살롱보다 더욱 우아하고 기품이 있다. 그녀의 비녀, 화장품, 향수 그리고 문지방 하나까지도 아름다우니 굳이 명소(내소사)까지 가지 않더라도 장면은 하나의 화폭이 된다. 화폭이 되어서 가슴까지 저려오는 아름다움이 흘러넘친다.
이병우 역시 음악으로 영화 전체를 조율한다. 바로크 시대를 연상하게 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던데, 우리가 많이 착각하는 부분-우리의 것이 가장 한국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과감하게 뛰어넘은 점이 좋다. 한마디로 모던하다. 아니 ko-dern하다. (Korean-modernism) 과감하지만 과하지 않고, 애틋하지만 슬프진 않다. 딱 한국적인 느낌이다.

영화는 비극적이다. 아름다운 비극이다. 결국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떠난다. 하지만 마음은 그 곳에 두고 간다. 그것이 설령 위험한 게임에서 비롯한 마음이었는지, 단순히 사회에 갇혀서 조그만 일탈이었을 지라도. 그들의 마음은 그림이 되어, 빨간 목도리가 되어, 그리고 꽃잎이 되어 슬픔 속에 떠다닌다. 영화의 마지막 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낭만스러운 슬픔이 아닐 수 없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