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폭탄맛을 많이들 먹기는 하지만 결국 학생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달콤한 맛과 매콤한 맛을 즐겨더랬다.
이 영화, 한마디로 폭탄맛 같다.
잔인함이라는 면에서 보았을 때, 우리가 "아 이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 하는 수위가 있을게다. 나는 개인적으로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이나 <킬빌>은 참을 만했지만 (사실은 열광했지만!!) 박찬욱의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매력이 있다. 마치 고어포르노물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나, 특히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과 비견되는 것을 보면 감독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성공이다. 가끔씩 보여지는, 혹은 느껴지는 몇 몇 감독들에 대한 오마주는 핏빛으로 현현히 빛나고 있다.
그리고 배우들의 얘기를 빼 놓을 수가 없는데, 최민식은 한마디로 "미쳤다."
감히 <추격자>의 하정우가 같은 살인마역으로 최민식과 비교되고는 하는데, 하정우는 "살인마 역을 연기한 배우" 였다면, 최민식은 "그냥 사이코 살인마" 였다. 그의 축축하게 불타는 듯한 불쾌할 정도로 강렬한 눈빛은 아쉽게도 이병헌을 압도한다. 원래의 이병헌 캐스팅이 한석규였음을 생각하면, 차라리 그 편이 이 영화의 컨셉이었던 "대결"이라는 점에서는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다. 이처럼 최민식은 영화내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면서, <실종>의 문성근이 보여줬던 그것에 최민식의 솜씨를 더했다. 결과물은 축축히 눅은 쿠키를 먹는 듯한, 그런데 그나마도 상해버린 그 쿠키를 꾸역꾸역 삼키는 견딜수 없을 정도의 "더러운" 연기를 보여준다.
이병헌 역시 영화내내 본인의 솜씨를 발휘한다. 진짜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느끼는지 절대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종종 눈빛에 슬쩍 비치는 그 차가운 광기는 관객들과 감독이 원하던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치 자신도 자신을 어쩔 수 없다는 그 잔인한 핑계는 영화 엔딩에서 무너져 버린다. 악마만 남아버린 그 자리에는 얼굴이 일그러지는,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가 가까스로 견뎌내던, 그저 가시 면류관을 쓴 구원자만 남아있다.
책이었던가 영화였던가 이런 구절이 생각난다.
"괴물을 잡으러 갈 때는 그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영화 속에서 유치하게 누가 악마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악마를 본 주체가 최민식(장경철)이었는지 이병헌(김수현)이였는지, 아니면 관객이나 평론가 였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악마를 보여주고 느끼기엔 그것은 너무 일차원적으로 잔인했고, 악마의 근원에 대해서 통찰하는 과정은 너무 짧았다. 피로 물들었던 속도감 넘치는 1시간 반을, 나머지 30분의 사색으로 감추기엔 영화는 너무 색깔이 분명했다. 그래서 조금은 아쉽다.
우리는 사실 악마를 "제대로" 보진 못했다.